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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의료 Learning Crisis와 포스트 코로나의 정보사회

  • 관리자 (irsglobal1)
  • 2020-11-02 22: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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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rad-it21.com/ai/kuniomi-shibata_20201001/

 

1. 포스트 코로나의 정보화란 ‘마법의 시대’를 말한다.

 

그리고 세계는 ‘마법’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21세기가 되면서 심화되는 ‘새로운 정보사회’는 아마도 ‘마법’의 세계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지금까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최신 기술은 ‘과학’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며, 기술을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존재가 곧 과학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마법’은 기술과 양립한다. 아니, 정보 기술이야말로 ‘마법’이 발동되는 전제 조건이다. 오히려 기술에 전면적으로 의존하는 생활 방식은 굳이 따지자면 ‘과학적’이 아니라 ‘마법적’인 라이프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딱히 인터넷 소설이나 만화에서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면 대체로 마법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던가 인터넷 게임 대부분이 마법과 관련된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그야말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다른 세계 사람에게, 이전 세기에는 핸들과 액셀을 사용하여 운전해야 했던 자동차가, 이번 세기에는 ‘집에 가자’는 음성을 인식하여 움직이는 등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과학의 시대’에서 ‘마법의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클라크의 3법칙’을 살짝 수정한 정도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되돌아보면, 확실히 우리의 정보사회는 이미 꽤나 오래 전부터 ‘마법’에 둘러싸여 있다.

 

YouTube의 믹스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적절하게 취향에 맞는 신곡을 가르쳐주는 ‘마법’이라 할 수 있다. AI의 일기예보는 분마다 신기할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예측을 해주기 때문에, 이제는 외출할 때 꼭 필요한 ‘마법’이다. 애초에 세계 최강의 대통령이 믿기 힘든 언행을 반복하면서도 기적적으로 어떻게든 세계를 나름대로 통치하고 있는, ‘마법’과 같은 믿기 힘든 시대라 할 수 있다.

 

‘마법’은 사실은 정보화와 상성이 좋다. 하지만 그 실상이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으로 인한 위기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새로운 정보화 시대에서 폭넓게 활용되는 ‘힘’이 ‘과학’인지 ‘마법’인지 잘 몰랐다. 그 힘이 ‘마법’과 같은 실상을 드러낸 것은 우리 세계가 COVID-19와 대립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에 대항하는 것이 ‘의학’이라는 과학 분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바이러스 자체를 상대하는 것은 근대과학의 맏형이라 할 수 있는 의학과 역학(疫學)이지만, 그것은 병원ㆍ실험실ㆍ연구실에만 한정되는 이야기이다.

 

정말로 이 감염증에 대해 사회적으로 대적하고 있는 최전선은, 우리의 생활 자체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시행되는 대책은 대부분 과학이라고 하기에는 불충분한 것뿐이며, 이쯤 되면 마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될 만한 것들이지 않은가.

 

‘코로나 사태’라는 표현은 참으로 모호하다.

 

실제로 우리는 COVID-19에 대해서는 과학의 은혜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만큼의 팬데믹이 일어난지도 어언 1년, 매일같이 ‘조금씩 알아냈다’는 보도가 있긴 하지만, 그러한 감염을 제어하지 못하고, 특효약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편 ‘새로운 생활 방식’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손 씻기나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리고 마스크와 접촉 확인 앱은, 정말로 적을 무찌르기 위한 과학적인 무기가 되고 있을까? 어린아이가 슈퍼에 들어가기 전에 익숙하다는 듯이 소독제를 손에 바르는 모습은, 감염증 대책이라기보다는 ‘절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는 것’, 또는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 뿌리는 성수’와 같은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밤거리로 나가지 않고 STAY HOME 상태를 유지하는 금욕 생활, 마스크를 착용하고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아래를 보며 걷는 절제. 접촉 확인 앱에서 알림이 없다는 것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경건함. 이것은 더는 증거에 기반한 과학적인 해결방법이라기보다는 불교의 계율이나 유대교의 율법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반년 이상 지속된 ‘새로운 생활 방식’은 인류가 지혜를 발휘하여 감염증과 싸운다는 작전에서 벗어나, 오히려 우리가 윤리적으로 또한 정형적으로 지키는 ‘기도하는 날’처럼 의례화되고 있다.

 

전시대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형태는 다양하지만 기능은 소박한 천으로 된 마스크 아래에서, ‘3밀’ ‘2m 간격’ ‘도쿄 알람’ ‘무지개색 스티커’ 등 카피 문구처럼 반복되는 말들은 대책이라고 하기보다는 마법의 주문을 외우는 것에 더 가깝다.

 

2020년 현재, 우리는 매일 마법에 의한 기적을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다.

 

COVID-19에 걸리지 않기를.

 

가족이나 직장, 통근 길에서 감염자를 만나지 않기를.

 

이번 주에 나온 열 번째 감염자 Uber Eats의 배달원도, 그 음식을 만든 아르바이트생도 불현성 감염자가 아니기를.

 

오늘도 편의점에 가지만,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만원 전철을 타고 회사에 가지만, 여기저기 틈새가 많은 아크릴판이 세워져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집에 가지만, 그래도 감염되지 않기를.

 

인간관계도 되돌아오고, 일도 회복되고, 결국은 경제도 무사히 제자리를 찾길.

 

이것을 Prayer Life... 마법을, 기적을, 세상의 구원을 바라는 삶 말고 무엇이라 표현할까.

 

21세기의 4분의 1이 지나고 있는 인신세(人新世)라고까지 불리는 시대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사회가 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세계에서, 우리가 이토록 열심히 ‘기도’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대체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므로 앞으로 도래할 시대는 ‘과학의 세기’가 아니다. 아마도 구제의 기도로 얼룩진 ‘마법의 시대’이리라.

 

2. ‘마법’이 발동하기 위한 3가지 조건

 

‘포스트 코로나의 정보사회는 마법의 시대이다’라고 말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등호(=)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정보사회와 마법의 시대가 모순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논해야 하는 것은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사회는 마법의 시대가 되어간다’는 것, 아니 오히려 ‘새로운 마법’의 시대의 기반을 정보 기술이 준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과학의 산물인 정보 기술이 왜 마법의 필수 요소라 할 수 있을까. ‘마법이 발동하기 위한 3가지 조건’을 정리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마법은 왜 발동하는 걸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마법’같은 것들이 존재했으며, 예외가 거의 없긴 하지만, 첫 번째 조건으로 거론되는 것은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마법이 발동하려면 spell을 외치거나 script를 허공에 그리는 것이 정석이다.

 

한편 정보사회에서 먹고 사는 데이터꾼(나도 그 중 하나지만)에게 script나 command 같은 것을 떠올리라고 하면, R, SPSS, KH coder 등의 통계 환경이나 처리 소프트 등을 떠올린다. 물론 대량의 데이터를 동반하는 통계의 세계에서 ‘t검정(檢定)’, ‘인자 분석’, ‘공기(共起) 네트워크’와 같은 검정, 함수 및 분석 방법을 보자면... 그 통계학으로서의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해도... 일종의 마법으로 착각할 만한 상쾌한 기분(또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초조함)이 들기도 한다.

 

이때 유의차가 나오거나 깔끔한 네트워크도(圖)가 나오면 ‘먹혀들었다!’라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곤 한다. 애초에 그 결과는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인과의 사슬이 아니라 단순한 관계성을 시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 사람의 인간이 취급할 수 없는 대량의 데이터를 기술의 힘을 사용하여 분석하고, 정보 단말기를 향해 명령어를 중얼거리는 등의 데이터 사이언스는, 원래는 어떨지 몰라도 표면적으로는,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우리를 일종의 ‘마법사’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데이터 사이언스는 우리에게 사회가 마법에 의해 거론되어도 좋다는 감각을, 고양감과 함께 가져다주는지도 모른다.

 

마법의 발동하는 두 번째 조건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 것이다.

 

마법은 그것을 거는 사람과 걸리는 사람 모두가 그 존재를 믿지 않으면 발동되지 않는다. ‘마법을 공감하는 공간’에서만 마법이 발동한다. ‘마법의 공간’에서는 발동하는 사람과 대상자 모두가 마법의 경건한 신자여야만 효력을 발휘하며, 그에 공감하지 않거나 의문을 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국제 사회의 가장 큰 마법사는 도널드 트럼프나 시진핑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가 말하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은 미신 같은 것으로서, 신자에게만 작용하며, 공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중국의 꿈’은 그 국경 안에서는 강한 공감을 얻지만, 그 외의 국가에서는 이해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히 마법은 효과를 발휘한다. 발휘하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를 바꿀 만한 힘마저 생긴다.

 

그러한 ‘한정된 공감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함께 믿는 팔로워만으로 구성되며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차단되어 접점조차 사라지게 되는 SNS는 최고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법이 발동하기 위한 마지막 조건은 매우 역설적이긴 하지만, ‘서로가 마법을 믿는 공감하는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는 서로를 믿지 않는’ 불신의 구조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법을 제창하는 사람은 마법을 거는 대상에게 무언가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며, 실제로 작용하고자 노력한다. 대상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직접 말을 걸면 된다. 마법이라는 특별한 영향력을 발동시키는 이유는, 상대방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마법을 믿는 사람들은 공감하는 공간에 살고는 있지만, 서로를 믿지는 않는다.

 

‘불신 관계의 구조’하에 있어야만 마법은 필요성과 유효성을 가진다.

 

그리고 ‘불신 관계의 구조’를 형성하는 현재의 정보사회에서 AI가 특별한 가치를 가지며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분석 능력이든 판단 능력이든, 결국 ‘사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AI가 필요하다. 판사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AI 보석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며, 주위 사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Social Credit System이 필요한 것이다.

 

AI는, 사람은 믿을 수 없지만 마법은 믿는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힘을 미치는 마법의 일종으로서, 그 입지를 다지고 있다.

 

3. ‘새로운 마법의 시대’의 서막으로서의 Learning Crisis

 

정보화가 심화된 사회에서는 어느 때보다 더욱 ‘기도’가 ‘신앙’과 공명하고, ‘공감’은 ‘불안’과 동조하며, ‘불신’이 ‘영창(詠唱)’과 뇌동(雷同)하게 된다.

 

이것은 COVID-19에서 세상이 구제되기를 바라며, 접촉 확인 앱을 십자가처럼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신사에서 손을 씻는 물이나 예의를 차리기 위한 행동인 듯 소독제로 손을 정결하게 하는, 우리의 ‘새로운 생활 방식’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오게 될 포스트 코로나의 정보사회에서 필요로 하며 힘을 갖게 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마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 ‘코로나 위기’ 즉 COVID-19 Crisis에서 제일 먼저 중단되고 결국 끝까지 멈추게 될, 그래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이 어린아이들,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교육 및 학습 현장이라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에서 COVID-19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가장 경시되는 것처럼 제일 먼저 폐쇄된 것이 아이들의 ‘배움의 터’였다. 일본 전체에 ‘긴급 사태 선언’이 내려지기 한 달도 더 전부터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대부분의 학교는 장기 휴교를 결정하였으며, 긴급 사태 선언이 해제된 후에도 분산 등교나 단축 수업을 하였다.

 

‘배움의 터’를 정상화하는 일이 가장 뒤로 미뤄지게 된 비극은, 계속된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새로 입학한 대학 캠퍼스에 가지 못하는 대학교 1학년 학생이라는, 전대미문의 존재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2020년 4월에 이러한 상황을 Learning Crisis(학습 위기)라 칭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그 문제 구조를 파악하여, 그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을 탐색해 왔다. 이 글은 그 전부를 논하는 것은 아니므로, 자세한 내용은 ‘학습 위기(마나키키)’ 사이트를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COVID-19가 만연한 기도와 공감의 ‘포스트 코로나 정보사회’에서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마지막까지, 그리고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이 왜 ‘배움’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Learning Crisis에 마주봄으로써 ‘새로운 마법의 시대’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게 될지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4. ‘마법의 시대’는 ‘과학의 세계’와는 양립하지 않는다

 

배움의 결실인 ‘과학’은 정보사회를 낳으며, 기도로 가득한 ‘마법’은 정보사회를 바라지만, ‘과학’과 ‘마법’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과학이 ‘주문’을 외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원인과 결과를 모순 없이 이론적으로 연결 지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기만 하면, 그것을 언제든지 알 수 있다. (중략) 그 배후에 있는 원칙은, 무언가 신비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모든 것을 원칙적인 예측을 통해 지배할 수 있다(후략)’ (Weber, 1919=나카야마 역(譯), 2009:191). 기적을 바라는 기도 의례나 주문을 조금이라도 허용하면, 이러한 논리적 일관성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한편, ‘기반으로 삼는 위치나 당파에 의해 사실이 변하는’ 정보사회에서는 ‘과학’이 무엇보다 중요시해온 증거 = 근거가 더욱더 힘을 잃게 된다. COVID-19에 관한 정보가 WHO, 행정, 언론, 그리고 자칭 타칭을 불문하고 수많은 의사ㆍ전문가ㆍ연구자들로부터 이렇게 많이 발해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중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이 그러한 경향을 더욱 드러내주고 있다.

 

정보는 ‘생각하는 이유’에서 ‘느끼는 소재’로 변질되었다. 이미 우리에게 있어 정보는 그 진위를 논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옳고 그름을 믿는 존재가 되었다. 대안적 사실화 되어 가는 정보사회에서 가치 있는 것은 ‘복음을 느끼고 믿는’ 힘이며, ‘근거를 추구하고 평가하는 ’힘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법으로 둘러싸인 정보사회에서 가장 경시되며 뒤로 밀려나는 것이 바로 ‘학습’의 장이었다는 사실 역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배운 것들은 학문이나 과학의 기반이 될 수는 있지만 마법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데다 그 기적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정보사회에서 힘을 갖는 것은 이론ㆍ비판으로 가득한 ‘과학’이 아니라 공감ㆍ감동을 통해 발동하는 ‘마법’이다.

 

그것으로 세상이 구원받는다면 불만은 없다. ‘COVID-19가 종식된다면 기도라도 좋다’ ‘비판에 가득 찬 사실보다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마법의 시대’는 불과 5세기 전만 해도, 천 년 동안이나 계속된 바 있다. 하지만 물론, 그러한 과거의 ‘마법’ 전성기... 이른바 ‘중세 시대’... 였던 세계가 얼마나 불합리한 고통으로 가득한 기도, 신앙, 그리고 불신의 시대였는지도 잊어서는 안 된다. 중세 시대가 암흑은 아니었다는 연구에 수긍이 가는 점도 많지만, 그것은 ‘마법의 세계’의 의례나 광신(狂信)이나 의심을 긍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아베, 1997 등).

 

‘마법’이라고 하면 ‘꿈’이나 ‘기적’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자.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마법’은 마녀사냥을 만들어낸 적은 있어도 ‘꿈’을 이뤄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꿈을 이뤄주는 것’처럼 보이는 환상이야말로 ‘마법’의 실상이다. ‘새로운 마법의 시대’가 출현하게 될 정보사회는 아마도 Society 5.0, Smart City, Hyper Human과 같은 매직 워드(Magic Words)를 통해 느껴지는 포스트 모던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러한 매직 워드가 주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새로운 중세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게 될 것이다.

 

5. 새로운 ‘마법’이 아니라 새로운 ‘학문ㆍ과학’을

 

새로운 ‘마법’의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

 

단순한 정보사회의 변용이라면 또 달랐을지도 모른다(시바타, 2019 등 참조). 하지만 COVID-19 Crisis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포로 인해 우리는 ‘배우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믿고 기도하는’ 길을 선택했다. Learning Crisis가 일어난 것도 당연한 일이며, 아마도 새로운 ‘마법’ 시대의 서막으로서, 역사에 기록되리라.

 

하지만 아직 조금이라도 늦지 않을 수 있다면, 한 번만 더 떠올려 보기 바란다.

 

‘마법’은 사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세계를 구한 적이 없으며, 꿈을 이뤄준 적도 없다. 우리 인류의 꿈은 언제나 ‘학문ㆍ과학’을 통해 실현되었다. 학문이 고집하는 오랜 논리적 일관성은 기도하지 않아도 결국은 이해할 수 있다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과학이 굳게 지켜온 근거주의는 공감할 수 없어도 합의할 수 있는 시작점을 찾는 노력과도 같다.

 

그리고 학문ㆍ과학이 마법과 달리 스스로에 대한 반론ㆍ반증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진심으로 신뢰할 수 없는 다른 사람과도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과학ㆍ학문은 기도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하지 않아도 합의할 수 있고, 진심으로 믿지 않아도 협력하기 위한 앎의 <기법(技法)>이다. 이만큼 정보화된 사회에서는 입장이 주류와는 다른 마이너리티나 다양하기 때문에 생기는 고유한 문제를 가진 약자가 오해를 받거나 혼동되거나 하여 거대한 공감의 틀에서 빠져나거나 동조를 강요당하거나 배제당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시바타, 2019:199).

 

우리가 이번 Learning Crisis에 대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배움을 뒷받침하는 인터넷 사이트, 그리고 각종 온라인 지원 활동인 ‘학습 위기(마나키키)’ 등을 지금까지 계속하는 이유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미래가 안일한 공감에도, 기도의 마법에도 아니고 배우고 생각하는 어려운 길의 끝에 존재하는 학문ㆍ과학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장애나 각각의 사정에 의해 배우기 어려운 환경을 가진 아이들은 적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의 특별한 용기와 주위의 각별한 노력으로 인해 지금까지 어떻게든 배움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COVID-19 Crisis 이후, 제일 먼저 중단되어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못한 ‘배움’을 경시하는 경향과 기도와 믿음으로 가득한 사회의 모습을 보고, 그 용기와 노력을 잃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증가하고 있다.

 

원래 장애가 있어도, 아무리 다양하고 서로 달라도, 사람은 사람으로서 평등하다는 인권사상은 기도와 믿음으로 얽매였던 중세 시대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생겨난 사상적 용기와 과학적 노력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다.

 

COVID-19 Crisis의 정보사회에서는 앞으로도 PCR 검사는 계속될 것이며, 백신 개발 및 접종이 이루어지고, 접촉 확인 앱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며, 전문가에 의한 과학적 설명도 수 없이 많이 발해질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앞으로 더욱더 ‘과학의 세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보사회의 미래에서, 그러한 것들은 실질적으로는 ‘마법’으로서 취급될 것이다. 그 이론은 더욱더 형태를 잃어가고, 그 근거는 더욱더 공허해지며, 불신이 보이지 않게 사회를 뒤덮을 때쯤에는 학문과 과학이 환골탈태하여 무엇보다 기도가 중시되는 미래가 도래하게 될지 모른다.

 

Learning Crisis는 학교가 휴교하거나 아이들의 학습 의욕이 저하되는 위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힘>이자, 우리가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협동하는 <기술>이자, 인간이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살아가야 함을 증명하는 <기반>이기도 한 ‘학문’과 ‘과학’ 자체가 상실되는 것이 바로 Crisis의 본질이다. 미래의 리더인 아이들의 ‘배움’이 위기에 처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현실은 매우 심각하며, 이러한 흐름을 따라 원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미래를 감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매우 명백하며, 그리 어렵지도 않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모든 아이들이, 그리고 우리가, 현재가 Learning Crisis임을 이해하고 ‘배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회복시키면 된다.

 

‘본질적인 배움’ 속에는 ‘마법’이 살아가지 못한다. 기도하지 않고 논리를 구하며, 안일하게 공감하지 않고 근거를 추구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반론을 마주보고, 반증을 받아들이며 계속해서 배워나가야 한다. 그것을 회고주의(懐古主義)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환술이 바로 ‘마법’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마법’의 시대에 온 것을 환경한다.”

 

지금 ‘마법’의 시대가 시작되고, 그 소용돌이 속에 있음을 자각한다면, 우리는 배움의 위기에 대한 반격을 시작할 수 있다.

 

‘마법’에서 눈을 뜨려면 자신이 ‘마법’에 걸렸음을 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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